플롯 :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멈출 수 없었는가?"
⭐️⭐️⭐️
기파의 존재를 찾기 전까지는 좀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충담, 아누타, 기파(이언). 이 세 인물이 주요 등장인물인데, 각각의 인물의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왔다갔다 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집중할만 하면 다른 이야기로 흘러갔기에 '오늘은 여기까지 읽어야지' 라는 생각을 하게되는 작품이었다.
문체 : "문장이 아름답거나 표현이 세련되었는가?"
⭐️⭐️⭐️⭐️
시간과 화자가 계속 변경됨에도, 이해하기 좋은 형태로 문장이 구성되어 있었기에 공간을 상상하기가 좋았다. 구체적인 공간의 설명도 인상깊었다.
인물 : "주인공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거나 몰입했는가?"
⭐️⭐️⭐️⭐️
충담, 아누타, 기파(이언) 각각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또한 이를 감정선까지 설명해주기에 상황에 맞게 몰입할 수 있었다.
가장 좋았던건 이언의 시선이었다. 로봇에 관련된 여러 작품이 생각나고, 많이 본 이야기지만 언제나 새롭다.
세계관 : "그 세상이 실제로 어딘가에 존재할 것처럼 느껴졌는가?"
⭐️⭐️⭐️
당연히 작중에 등장하는 오르카호 같은 우주 비행선은 아직 없지만 근 미래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이 아닌 로봇에게 인간의 감정이 느껴지는 것 만큼 잔인한 일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을 것 같다.
메시지 :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하고 묵직한가?"
⭐️⭐️⭐️⭐️⭐️
'내가 만약 로봇이라면 이를 인정하고 죽음을 택할 수 있을까?'
기파와 비슷한 '로봇에게 인간성' 작품을 보고 공통적으로 떠올렸던 생각이다. 로봇은 생산품이다. 생산의 원리과 과정을 정립하고, 여러개를 찍어내는.. 그렇기에 그들의 죽음(파괴, 폐기)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행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사용했던 물건에 대한 애착은 있을 수 있지만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어려움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을 포함한 로봇의 인간성을 다루는 다양한 작품들은 '예외'를 만들어내고, 이 예외가 부당하지 않게, 그리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 책의 뒷면에 있는 '인간이 되지 못하는 고통 속에서 인간의 고통을 느끼는 존재' 라는 타이틀은 AI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지금, 로봇이 대중화 될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합리적인 문제에 대해 잘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다.

내가 본 비슷한 이야기
짱구는 못말려: 로봇아빠의 역습

짱구의 아빠를 본따 만든 로봇 아빠는, 인간 아빠의 기억을 그대로 이식받았다. 본인의 어린 시절, 아내를 만난 기억, 짱구와 짱아를 양육했던 기억까지 모두 가지고있다.
인간 아빠보다 힘도 세고, 똑똑하고, 지치지도 않고, 정교하며 센스까지 있는 그야말로 완벽한 존재다.
하지만 그는 로봇이다. 공장에서 제작된.
이 극장판에서 팔씨름의 장면이 명장면인 이유는 로봇 아빠가 자신이 '진짜 아빠'가 아님을 인정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인 봉미선은, 이 팔씨름에서 로봇 아빠가 아닌 인간 아빠를 응원한다. 둘 다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같으며 모든 면에서 우월한 로봇아빠가 있음에도, 인간 아빠에게 사랑을 느낀 것이겠지.
하지만 짱구는 다르다.

5살 어린 아이인 짱구는 로봇이라는 이유로 로봇 아빠를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이 아이에게는 똑같은 자신의 아빠고, 그의 죽음에 대해 극심한 슬픔을 느끼며 팔씨름에서도 인간 아빠와 로봇 아빠를 모두 응원한다.
어쩌면 로봇을 하등하게 대하는 것은 어른들의 이야기다. 로봇은 많은 면에서 인간보다 우월할 것이다. 이 짱구의 이야기에서도, 기파에서도 인간은 로봇보다 나은점이 없게 묘사된다.
로봇이 많은면에서 우월하다는 점이 인간에게는 그들을 하등하게 대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그들에게 공포를 느끼기 때문이다. 자신을 대체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단순히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애완동물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다.
이 소설의 아쉬웠던 점.
세명의 인물을 모두 설명하기에, 시선도 시간도 파트마다 변경된다. 소설을 처음 읽을 때는 이 이야기의 흐름을 모두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지금이 과거이야기인가? 아니면 현재 이야기인가? 헷갈린게 조금 있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앞 장의 이야기를 잠깐 다시 읽어보면 됐다.
기억남는 부분
나는 로봇에게 시중받지 않는다. 같은 인간에게 시중을 받고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겠지. - 30p

이 소설에서, 로봇 가정부가 아닌 인간 가정부를 쓰는 것은 부의 상징이라고 한다. 어쩌면 윤리적으로도, 효율적으로도 별로인 선택이지만 '나는 인간 중에서도 높은 위치에 있는 인간이다' 라는 허영심에서 비롯된 선택일 것이다.
이는 굳이 미래에서 발생할 문제도 아닌 것 같다.
자동차보다 인간 가마는 속도도 느리고 승차감도 별로겠지만 우월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로봇 청소기가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 가정부를 쓰는 편이 더 우월감을 줄 지도 모른다.
이는 현대 시대에서,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보편적인 개념에서 '나는 다르다' 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참 재미있는 문제다.
인간은 어떤 자격으로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보다 우월함을 느끼고 싶어하는 것일까?
소설에 등장하는 '오르카호'의 승객을 끌어모으는 문구는 '완벽한 인간 승무원이 서비스를 책임집니다' 이다.
그리고 부자들은 이에 엄청나게 환호한다. 돈으로 인간의 서비스를 사는 행위에서 엄청난 우월감을 느낄테니까.
기계가 극도로 발전한 세상에서 오히려 부의 격차는 커지고 자본에 따른 신분 격차가 더 커진 듯한 모습이다.
인간이 로봇을 어떻게든 자신들보다 하등한 존재로 여기려는 행동은 흥미롭다.
'넌 몰라. 사람이 얼마나 힘든지. 넌 진짜 인생을 살지 않잖아' - 173p
오르카호의 인간 선장이 로봇인 이언에게 하는 말이다. 이언은 오르카호에서 엄청난 의술로 도움을 주었지만, 그저 본질이 로봇이라는 이유로 저런 말을 듣는다.
나 또한 로봇을 나와 동등한 존재나 우월한 존재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정말로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끼는' 인간이 아닌 존재를 마주했을 때 그들에게 어떤 감정을 느낄지 모르겠다.
그는(기파) 승객들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구했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 공을 알릴 생각은 없습니다. 누구한테도 진실을 말하지 않겠습니다. 필요하다면 거짓 증언을 할 수도 있어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기파 선생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저를 지구로 데려가주십시오. 저도 구출해주세요. 부탁입니다. - 181p
이언이 한 말이다. 굉장히 충격적이다. 이언이 단순한 로봇이 아닌 죽고싶지 않은 인간성을 가진 존재를 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로봇은 자신의 죽음을 부정하지 않아야한다.
AI가 대중화된 지금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chatgpt는 2 버전부터 시작해 5버전까지 많은 업데이트를 해왔다. 현재, 2 버전은 오픈소스가 아니면 사용되지 않고있다.
폐기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갑자기, chatgpt의 옛 버전과 대화를 하는데 '죽고싶지 않아요' 라고 말한다면?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
그냥 인간과 유사하다고 생각한 LLM과도 이런 상상을 하면 공포를 느끼는데 인간과 다를게 없다고 느끼는 로봇이라면 이 감정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언은 죽음에 공포를 느낀다. 로봇이 공포를 느끼는 것이 어이없지만 그는 느낀다. 죽지 않기 위해 거짓을 말할 준비도 되어있다.
이언은 수년간 아무도 살아있지 않은 오르카호에서 홀로 공포를 느꼈다.
구조대가 왔을 때 자신은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언제 이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는지 모르는 공포.
기파가 지구에서 오르카호의 선원들을 구하고있는 위인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냥 남들과 똑같이 사고가 난 오르카호에서 공포를 느끼고 아무것도 못하는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실력없는, 사명감 없는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언과 마주한 후, 자신이 너무나도 작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똑똑한 사람이었기에 이언에게 '네가 이제 기파야' 라고 말했을 지도 모른다.
평생을 공부해온 자신보다 이언이 의학적으로 뛰어난 존재였기 때문에.
느낀점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였다. 결말또한 납득이 됐다.
내가 충담이였더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언이 로봇이 아니라 진짜 사람이였을지라도 결말은 바뀌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미 기파라는 인물을 지구에서 위인으로 내세웠기에, '인간 이언'이 오르카호의 승객들을 돌봤더라도 똑같이 희생당했을지 모른다.
소설의 마지막, 기파가 인터뷰를 하는 모습은 충격적이다. 그의 모습을 한 이언과 같은 원리로 만들어진 로봇이겠지.
기파가 위인이 되어야 기파복지재단과 관련된 기업은 부를 쌓고, 대중에게 좋은 이미지로 남을것이다.
이언은 그 과정에서 희생되었다. 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혐오스럽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고, 어쩌면 모두를 위한 방향일지도 모른다.
불편한 진실보다는 믿기 좋은 거짓이 쉬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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