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기
책을 선물 받았다. 이전에도 책을 선물 받은 적이 있지만, 항상 자기개발서였다.
내가 하루 종일 컴퓨터만 하는 개발자라서, 어른이 되고 나서 허구의 세상보다는 경제나 시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 그리고.. 현실을 사는데 바빠서 소설을 멀리하고 살았다. 물론 변명이지만, 확실히 나의 관심사와는 거리가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기 전에는 문학 작품을 정말 좋아했다. 나의 세상에 빠져 긴 여운을 남기는 그 감정이 정말 좋았다. 어른이 되기 전에는 분명 그랬다.
이번 겨울에, 감사하게도 너무 좋은 소설책을 소개받았다.
양면의 조개껍데기는 7개의 단편소설 모음집인데, 각 이야기는 모두 다르지만 '내면', '감정' 이라는 키워드가 공통으로 떠올랐다.
이 책에 있는 모든 소설이 '인물에 대한 숨은 의미'를 찾아나가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숨은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를 하는 순간, 깊은 감명을 받을 수 있었다.
기억나는 구문들
수브다니의 여름휴가
"녹슬고 싶어요"
최근에 친구들과 '영생'에 대해 이야기했다. 친구 중 하나는 영생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안드로이드로 태어나 사람으로 변환된 수브다니는 본질은 기계이지만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늙어가고 싶다' 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남상아와 함께한 '작품' 에서 다른 안드로이드들은 녹슬어가는데, 수브다니만 멀쩡하다고 했다. 작품에서 수브다니가 왜 금속 피부를 원하는지 명확히 이야기 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러움'을 원하지 않았을까. 남들과 함께 끝을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진동새와 손편지
" 더 기다릴 수가 없었어요. 지금 당신을 만나러 와야 했어요. " ... 이상하지? 앞으로도 난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거야. 고작 그 말을 다시 쓰기 위해, 그렇게 많은 새들이 필요했다니.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효율을 정말 중요시한다. 마치 나처럼.
나는 이전에 '감정 있는 로봇'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입은 공감을 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어설픈 몸짓과 표정이 드러났던 걸까?
이 단편 소설에서는 같은 문자여도 전달 형태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고 한다.
어린 여자아이가 '보고시플거에요' 라고 쓰는 문자는 맞춤법도 틀리고, 글씨도 삐뚤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른이 작성한 글보다 '애틋하고 감정이 느껴진다' 라고 느낄 것이다.
그래서, 지구인의 문자에 대해서 '의도적인 불완전' 이라고 표현하지 않았을까?
문자로도 마음을 전할 수 있지만, '더 잘 전해보고 싶은', 가성비가 나오지 않는 방법을 택하는 경우도 있는 게 아닐까.
편지는 컴퓨터로 쓰는게 아니라, 손으로 쓸 때 더 마음이 가는 것 처럼.
달고 미지근한 슬픔
이 세계의 모든 것이 거짓인데,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자신이 '살아있다' 라고 느껴요.
이 이야기의 세계는 양자컴퓨터 시뮬레이션 세계라고 한다. 정말 흥미롭고, 신기한 세계관으로 느꼈다.
이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은 자신이 가짜라는 것을 안다고 했다. 하지만, 이를 인지하고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면 고발당하기에, 무엇인가에 '몰두' 하는 것이 의무라고 한다. 사실, 나는 아직 이 소설은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이야기의 후반에, 주인공은 '전제가 틀렸다' 라고 하며 자신이 고민하던 것에 대한 해답을 얻는데 이 과정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주인공이 '살아가야 하는 의미'를 찾아나서는 과정이 너무 좋았다.
양봉장에서 홀로 너무 재미있는 삶을 살아가던 주인공은 어쩌면 '굳이' 바깥세상으로 나가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많은 고통과 시련을 겪지만 결과적으로는 '살아있다' 라는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나도, 어느새인가 개발 말고는 아는 게 없어지고, 관심이 사라졌는데 이번 기회에 더 넓은 세상을 보며 '살아가는 것'에 대해 한 번 더 생각을 해보고 싶어졌다.
느낀 점
사회에 나오고 나서, 나는 가면을 쓰고 살았다. 현실에 있는 것들에 대한 가벼운 이야기, 가십거리 등 별로 관심 없는 이야기들에 웃으며 호응해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나의 모습을 싫어하지 않았다. 가끔 나의 머리에서 생각한 방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사람들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 ㅋㅋ
그래서 점점, 현실에 나를 맞추게 되고, 그냥 기계처럼 사람들을 대했나보다.
소설을 정말정말 오랜만에 읽었다. 나는 소설이 단순하게 '허구'의 이야기를 읽으며 즐거움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읽은 책은 주인공에 이입하며 나 자신에 대해 지속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어릴 때, 소설 속 세상, 게임 속 세상을 좋아했던 나의 시절이 떠올랐다.
그래서 약간의 눈물이 났다. 잊고있던 나의 어릴 때가 떠올라서.
나는 왜 현실에서 일과 돈만 생각하며 살고 있었을까? 나에게 이런 환기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도 모르고.
이 책을 계기로, 다양한 소설과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더 찾아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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